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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비트는 좋은 영혼이 만든다"

1세대 드러머 김희현의 반세기 드럼 인생

 

(조재희 기자)

 

1960년대 클럽 무대에서 연주를 시작한 그는 한국의 1세대 드러머다. 'MBC 관현악단'에서 8,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 'KBS 관현악단'에서 각각 10년 이상씩 연주했다. 한국 전통 음악의 뿌리를 찾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예술단 <김희현과 아우름>을 창단했다. 재즈 그룹에서 활동 중이며 월드뮤직을 연구해 중앙대학교에서 타악기 전공생들을 가르친다.

 

열일곱에 처음 잡은 드럼 스틱은 반세기가 넘도록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김희현에게 드럼은 거스를 수 없는 천직이다.

 

 

 

운명처럼 북을 만나다

 

 

- 드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입학식 때 키가 작아 줄 맨 앞에 섰습니다. 그때 교내 브라스 밴드의 신입생 환영 공연에 압도당했습니다. 심장을 울리는 북소리에 감동해 곧바로 밴드부에 등록했죠. 밴드부 내 체벌이 심했는데 드럼이 좋아 끝까지 버텼어요."

 

- 드럼 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학교에서는 브라스 밴드 연습을 하고 방과 후에 드럼 학원을 따로 다녔어요. 당시에는 드럼 전공이 없었기 때문에 실력 있는 드러머를 만나려면 라이브 클럽에 가야했습니다. 학원을 가지 않는 날에 라이브 클럽에 직접 찾아가 레슨을 받았어요. 실력이 쌓인 후에는 연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학생인 걸 들키지 않으려고 가발도 썼죠."

 

- 음악적으로 가족의 영향이 있었나요?

"아버지의 음악 DNA를 물려받았어요. 말을 배우기 전에 북소리부터 배웠죠. 제가 태어날 무렵 고향 완도에서는 판소리가 성행했습니다. 판소리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는 시간만 나면 북을 치면서 소리를 즐겼습니다. 목포국악원의 유명한 선생과 소리꾼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소리를 하기도 했어요.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북을 가지고 놀면서 자랐습니다. 할아버지는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당신이 자수성가로 이룬 집안을 손주가 음악한다고 무너뜨릴까봐."

 

더부살이 하며 보낸 아마추어 시절

 

 

- 본격적으로 드러머로 활동한 건 언젠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했습니다. 클럽에서 연주하기 시작했어요. 70년대 서울 무교동에는 술집과 라이브 클럽이 모여 단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실전으로 드럼을 터득했어요. 그렇게 드럼을 배우고 실력을 키우는 것이 그 시절에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죠."

 

- 아마추어 시절 실력을 기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유일하게 대중에 노출된 매체는 TV였어요. 쇼 프로그램에 잠깐 등장하는 백밴드 드러머를 보고 테크닉을 연구했습니다. '빽판'이라고 불렀던 레코드판 복제품을 구해 판이 휠 정도로 들으며 좋은 패턴을 카피했어요. 공연 쉬는 시간에 옆 클럽에 가서 실력 있는 드러머의 연주를 슬쩍 보고 오기도 했죠."

 

- 클럽 공연만으로 생활이 가능했나요?

"힘들었습니다. 특히 주거 문제가 가장 어려웠어요. 무교동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들 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10년을 보냈죠. '신병하와 사계절' 밴드 시절에는 신병하씨의 집에 얹혀 살았어요. 집이 봉천동 달동네의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클럽에서 새벽 4시까지 공연을 하고 해가 뜨면 귀가했습니다. 겨울에는 양손에 연탄을 두 장씩 들고 가파른 골목을 올라가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눈이 오면 신병하씨 어머니가 새벽부터 골목의 눈을 쓸며 내려오셨어요. 언덕 중간에서 신병하씨 어머니를 만나면 가슴 한 편이 먹먹해졌죠."

 

 

 

프로의 세계에 진출하다

 

 

- MBC 관현악단에 들어가면서 프로의 세계에 진출했습니다.

"라이브 클럽이 마이너 필드라면 공중파 방송국은 그때 당시 유일한 메이저 필드였어요. MBC 관현악단에서 일하던 친구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 저를 악단에 소개해 줬습니다. 스물 여덟살에 최연소 방송국 전속 드러머가 됐죠."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금주의 인기가요' MBC의 모든 쇼 프로그램에서 연주했습니다. 젊은 나이여서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그 영향으로 레코딩 스튜디오와 유명 가수들로부터 러브콜이 왔죠. 한국에 그룹사운드가 붐을 이뤄 밴드 레코딩 수요가 많을 때였습니다. 본격적으로 레코딩 세션맨 일을 시작했어요. 방송국 일을 하면서 저녁에는 클럽에서 연주하고, 스케쥴이 없을 때는 세션맨으로 활동했습니다. 정신없이 바빴어요. 그렇게 10년 가까이 일하다 보니 드러머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그의 이름이 대중에 알려진 건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활동을 하면서다. 밴드 멤버들은 조용필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처음에 그는 조용필 밴드의 제안을 거절했다. 안정적인 방송국 생활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조용필 밴드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방송국 월급의 세 배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는 10년 동안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활동을 하며 한국의 드럼 일인자로 자리매김했다.

 

-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활동 중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나요?

"조용필 밴드를 하면서 처음 해외 투어를 다녔습니다. 해외에 나가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신세계였죠. 미국의 30개주 투어를 하면서 스스로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깨달았어요.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인가요?

"조용필 밴드에서 나온 뒤 KBS 관현악단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하와이 이주 100주년 기념공연'을 했는데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밴드들이 모여 개성 있는 공연을 펼쳤습니다. 저는 판소리 소리꾼 안숙선 명창과 '뱃노래'를 연주했습니다. '일고수이명창'이라는 판소리 공연에서 드럼으로 고수 역할을 했습니다. 관객들과 외국인 연주자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대기실로 찾아와 연주법을 묻기도 했습니다."

 

 

'한국적 재즈'를 위해

 

안숙선 명창과의 '뱃노래' 공연은 드럼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이전에도 개인 드럼 콘서트에서 장르 크로스오버 공연을 했지만 '뱃노래' 이후로 국악과 판소리에 대해 더 깊게 연구했다.

 

국악을 탐구하며 다른 음악 장르의 '뿌리'에도 관심을 가졌다. 클래식과 세계의 민속음악을 공부했다. 중앙대학교 연희예술전동 타악기과에서 월드뮤직 강의를 시작했다. 음악의 근본을 파고드는 여정은 퓨전 국악 밴드 <김희현과 아우름>으로 이어졌다.

 

- '한국적 재즈'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재즈는 '비빔밥' 같은 장르입니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흑인 난민들이 버려진 악기들을 모아 연주한 것에서 시작했어요. 클래식에서 인기가 없었던 악기들에 아프리카 민속 감성을 담아냈죠. <김희현과 아우름>이 하는 작업은 한국의 전통 음악에 다양한 음악 장르를 믹스하는 것입니다. 우리만의 정체성을 찾되 새로운 색깔을 입히고 싶었어요."

 

- 국악과 서양음악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길에 비유하자면 한국음악은 구불구불한 오솔길 같아요. 가는 길에 강과 산이 있어 둘러볼 수 있죠. 자연스러움이 가장 큰 특징이에요. 서양음악은 반듯한 고속도로 같습니다. 여유롭게 거닐기보단 질주하는 음악입니다."

 

 

 

 

연주에는 연주자의 내면이 드러난다

 

 

- 드럼에 대한 철학이 있나요?

"음악을 잘하고 못하는 것은 연주하는 사람의 내면에 달려있습니다. 테크닉은 10년이면 익힐 수 있어요. 그 다음부터가 중요합니다. 연주자가 갖고 있는 소스가 그대로 연주에 드러납니다. 좋은 음악을 하려면 스스로의 내면에 좋은 것을 담아야 하죠."

 

-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요?

"좋은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종교를 탐구했습니다. 다양한 종교 중 가톨릭에 마음이 움직였죠. '나눔'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가진 것이 드럼을 치는 조그마한 기술뿐이라 봉사 공연을 많이 다닙니다."

 

- 드러머로서 버킷리스트가 있습니까?

"가무악(歌舞樂)의 조합으로 예술의 완성체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가무악은 음악의 기본적인 요소들이에요. 드럼을 단순히 기술이 아닌 예술로 승화시켜 노래, 무용과의 융합을 이뤄보고자 합니다. ''끼리 모여 무대 위에서 예술로 소통하고 종합해보면 무엇이 나올까 궁금합니다."

 

- 후배 드러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많이 모방하세요. 다른 사람의 장단점을 파악해서 자신만의 것으로 재창조해야 합니다. 한 가지 조건은 '진정성'입니다. 자신만의 것을 만들고 싶다면 모든 박자에 솔직한 감정을 담으세요. 드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죠."

 

 

드럼에는 가사도 멜로디도 없습니다. 때리는 소리만으로 영혼의 깊숙한 부분을 끌어내고, 미세한 강약 조절만으로 내면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 , . 그는 드럼 비트를 쌓아 올리며 인생의 다양한 진리를 배웠다. 장르를 넘나드는 드럼의 거장 김희현은 테크닉을 넘어 예술의 정수를 찾기 위해 여전히 스틱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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